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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는 살아있다...페인트 넘어 종자·바이오 기업으로

2018.11.20

-‘강산이 일곱 번’ 바뀔 동안 페인트 한 우물…매출 1조 기반으로 종자·바이오에 새 도전
 


서울 DDP에서 11월 15일 열린 ‘2019 노루인터내셔널 컬러 트렌드쇼(NCTS)’에서 세계적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마리오 벨리니가 강연했다.​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11월 15일 열린 ‘2019 노루인터내셔널 컬러 트렌드쇼(NCTS)’는 노루페인트로 잘 알려진 노루그룹이 2011년부터 매년 진행하는 행사다.
어두운 조명 아래 설치된 대형 디스플레이에서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화려한 색채의 향연이 펼쳐졌다. 마치 트렌디한 클럽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 속에서 ‘색’과 관련한 강연이 진행됐다. 
디자인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마리오 벨리니 등 세계적 유명 인사들이 이번 쇼에 참석해 색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얘기했다. 또 내년엔 어떤 색이 주목받을지 예상했다. 행사장을 빼곡하게 채운 1000여 명의 참석자들은 분주했다.
화면을 보는 동시에 이들의 말을 옮겨 적느라 눈과 손을 바삐 움직였다. NCTS의 당초 취지는 컬러에 대한 정보를 산업계에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패션이나 디자인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까지 색 트렌드를 엿보기 위해 스스로 찾아오는 행사가 됐다. 

끝없는 연구·개발로 지속 경영 토대 마련
노루그룹의 올해 나이는 73세다.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페인트업계에서 가장 젊고 혁신적인 경영을 하는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어 눈길을 끈다.
노루그룹의 행보를 들여다보면 보수적이라고 불리는 페인트 회사의 영업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건설 경기 침체 등으로 페인트업계 역시 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다양한 ‘혁신 전략’을 내세우며 실적도 선방 중이다.
NCTS뿐만이 아니다. 노루그룹은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들과 협업도 진행 중이다. 노루페인트를 이용한 벽화를 국내외 곳곳에 선보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패션 디자이너들과 손잡고 노루의 스프레이 페인트를 활용한 의상을 선보여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를 통해 ‘노루’라는 이름 또한 젊은이들에게 익숙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노루가 젊은 기업으로의 이미지 변신이 가능했던 것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혁신 DNA’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 동향을 파악하고 여기에 걸맞은 기술을 개발하자’는 목표 아래 창업 초기부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술 혁신에 매진해 왔다.
이는 노루가 수많은 풍파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70년 넘는 동안 경영을 이어 올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늘 노루 앞에 붙는 ‘업계 최초’라는 꼬리표가 이를 증명한다. 
노루는 1956년부터 자체 연구소를 운영했다. 업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사원들을 집중 배치해 인쇄 잉크의 신제품 개발과 함께 도료의 생산 실험에 착수했다.
노루 관계자는 “연구소야말로 노루가 지금까지 성장하는 기업으로 있게 해준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1976년에는 독립 연구 기관인 기술연구소를 신설했다. 품질 향상과 신제품 개발을 위한 시장 수요 조사, 특허에 관한 연구 등이 이때부터 이뤄졌다. 1987년에는 색채연구소를 설립하고 자연색 그대로를 나타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 또한 업계에서 전례 없는 일이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노루도 어려움을 피해 갈 수 없었다. 특히 최대 납품처였던 기아자동차 부도가 결정적이었다. 

30년 후를 바라보며 신사업 투자 
당시 노루는 도료 생산량의 90%를 기아에 공급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사상 첫 적자를 냈다. 일각에서는 노루 역시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노루는 달랐다. 위기를 버티고 살아남았다. 외환위기 이후 경기가 다시 살아나면서 노루도 사세를 회복해 나갔다. 노루 관계자는 “끊임없이 개발한 기술들을 바탕으로 위기 역시 헤쳐 나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노루는 안주하지 않았다. 노루는 2006년 회사를 지주회사인 노루홀딩스와 노루페인트로 분리했다. 회사 분할을 통해 노루페인트는 고유 사업부문에 전념하도록 했다. 
반면 노루홀딩스는 자회사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혁신 전략을 개발해 지원했다. 이런 전략은 유효했다. 노루가 NCTS와 같은 다양한 경영전략을 내놓은 것도 이후부터다. 이제는 완전히 젊은 기업으로 이미지를 탈바꿈시키는데 성공했다.
도전을 위한 혁신은 현재 진행형이다. 페인트라는 70년간 ‘한 우물’만 파던 데서 벗어나 새로운 사업 영역에도 발을 내디딘 상태다. 노루홀딩스는 2014년 자회사로 ‘노루기반’을 설립했다. 미래 유망 사업으로 꼽히는 종자·바이오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현재 경기도 안성에 연구 단지를 조성하고 글로벌 종자·바이오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 
노루 관계자는 “20~30년 후를 보고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며 “해당 분야에서도 페인트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돋보기 “노루처럼 사랑받는 회사 키우자”로 시작된 73년 역사
서울 회현동에 198㎡ 남짓한 공간에서 출발한 노루는 현재 21개 계열사에서 1조원 넘는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과정도 흥미롭다.
노루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해인 1945년 ‘대한오브세트잉크’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창업자인 한정대 노루그룹 전 회장은 ‘나의 조국을 위하여’라는 사업보국의 기업 이념을 바탕으로 설립했다.
그는 회사를 차려 교과서 등의 출판에 사용되는 잉크를 생산하기로 결심한다. 광복 이후 우리말과 글은 찾았지만 정작 이를 담을 종이와 잉크가 부족하다고 느껴서다. 이렇게 한국 최초의 잉크 생산 회사가 만들어졌다.
이후 한 전 회장은 회사를 보다 성장시키기 위해 잉크 외의 새로운 분야를 적극 모색했다. 그 결과가 페인트였고 한 전 회장은 1953년 선진국의 페인트 공장을 견학하기 위해 혼자 유럽과 미국으로 산업시찰을 떠났다.
이때 노루라는 상호도 만들어졌다. 유럽 방문 중 한 전 회장은 당시 서독의 수도인 본에 들르게 됐다. 우연히 한 화랑에서 ‘한 쌍의 노루 그림’을 발견했다. 평소 노루를 좋아했던 그는 그 자리에서 노루 그림을 샀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유순한 동물 노루처럼 사랑받는 회사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사명을 노루페인트라고 지었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9호(2018.11.19 ~ 2018.11.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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